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최고경영자조찬회ㅣ윈엔윈은 어떻게 세계 시장을 제패하였나

백지영
·
2024-08-2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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박경래 대표는 대한민국 첫 국가대표 양궁 선수이자, 코치로서 1985년 세계선수권대회, 1986년 아시안게임, 그리고 1988년 올림픽에서 역사상 첫 금메달을 가져오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. 한국 양궁의 금빛 행진 시초인 그는 활을 쏘는 사람에서 직접 제조하는 사람으로서 변화를 꾀하며 활 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. 보유한 특허만 40개, 글로벌 활 시장 점유율 60%로 현재 30여 개의 나라에 활을 수출하며 세계 시장을 제패하고 있는데요. 이번 리뷰에서는 박경래 대표가 숱한 커리어의 변화 속에서 후발 주자로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지 그의 창업 여정을 뒤밟아 봅니다.

 


 


 

 

 

 

 

 

스포츠인, 제조업에 뛰어들다

 

스포츠 선수가 제조 회사를 경영한다는 것이 특이한 이력인 듯 보이지만 사실 나이키, 아디다스 등 세계적으로 비슷한 케이스가 많이 있습니다. 어쩌면 가장 그 종목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한 사람이 본인에게 필요한 용품을 만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.

 

지난 올림픽에서 또 한 번 확인하였듯, 한국의 스포츠 수준이 세계 정상 수준으로 올라갔습니다.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스포츠 용품 회사는 전무한 실정이고, 있다 하더라도 시장 점유율이 5% 이내에 불과합니다. 박경래 대표는 그 이유로 국내에 스포츠인이 창립한 스포츠용품 회사가 없기 때문이라 꼬집었습니다.

 

그가 창업을 하게 된 계기는 목표 달성 이후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. 선수 생활을 뒤로한 채 지도자로서 활약하게 된 그는 세계선수권, 아시안게임, 그리고 올림픽 3관왕과 미국에서 양궁 지도자들 앞에서 세미나를 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. 몇 년 뒤,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며 미국 양궁협회에서 초청을 받아 4~500명 정도의 지도자를 모아두고 4시간 동안 강연을 함으로써 그의 꿈은 또 한 번 현실로 이루어지게 됩니다.

 

이른 나이에 높은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, 지도자로서의 삶에 대해서 고민이 되기 시작합니다. 성취감과 만족감보다는 이유 모를 허탈함에 방황을 하기도 했습니다. 결국 그는 스스로에게 새로운 목표가 필요..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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